오빠 차 뽑았다, 널 데리러 가.. 진 못하지만

오빠 차 뽑았다, 널 데리러 가.. 진 못하지만

2024, May 11    
  • 보고 싶은 신흥사 스님, 종무원들. 그리고 갈라파고스의 친구들에게

0. Index

  1. 차(車)와 차(茶)
  2. 차의 추억
  3. 사회인이 된 후
  4. 같이 나누고 싶은 차
  5. 마치며


1. 차(車)와 차(茶)


난 운전에 관심이 없다. 성인이 된 후 운전에 대한 권유를 많이 받았지만 쳐다보지도 않았고 장롱 면허도 없다. 면허만이라도 따라는 명분에는 납득하고 이해도 되지만 난 하기 싫으면 어지간히도 안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면허가 없다. 물론 ‘운전을 했더라면’ 하는 순간도 있다. 첫 회사 입사 확정 후 약 2주간 제주도를 간 적이 있다. 그때 처음 제주도를 혼자 갔는데, 제주도가 운전 없이는 돌아다니기 어렵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제주도 주요 여행지를 돌아다니기 어려웠던 나는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화책만 죽어라 읽거나 밖을 돌아다녀도 교통이 편한 제주도 시내만 돌아다녔다. 시내에서도 뭘 찾아보고 특별한 곳을 가는 대신 동네 주민센터에 들어가서 직원분께 주민 평생 교육에 대한 강의나 그곳 설비 등을 설명 듣고 체험하는 등 지금 생각하면 ‘뭔 생각이었을까’ 하는 행동을 했다. 아, 넥슨컴퓨터박물관에 간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이곳만큼은 제주도 여행 가는 분들도 시간 내서 갈만하다고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재밌었다. 물론, 그때는 넥슨에서 일할지 몰랐지만. 또 일본을 여행할 때도 도쿄는 괜찮았지만 훗카이도 시골을 돌아다닐 때 내 운행의 폭은 시내 버스와 기차 권역으로 한정됐다. 그래서 훗카이도에서 가장 번화한 삿포로를 최대한 벗어나 시골 갈 때까지 가보자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통탄했는데, 후회하며 귀국했지만 막상 또 돌아오니까 똑같더라. 난 내가 좋아하는 대중교통 타며 책을 읽거나 게임하는 게 즐겁다. 근데 면허를 이제는 따볼까 한다.

난 차(車)와는 거리가 멀지만 다른 차(茶)에는 관심이 있다. 타는 차가 아니라 마시는 차. 이하 언급되는 차는 모두 마시는 차(茶)를 의미한다. 어릴 때 차에 관한 소소하지만 강렬한 추억이 있는데 그 끈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내 시야에 잔상을 남기고 있다. 이 거듭되는 감정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정말 오랜만에 글을 하나 써본다.


2. 차의 추억



2.1. 신흥사 템플스테이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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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이었을까. 완도의 신흥사에서 5일간 템플스테이를 했다. 신흥사는 바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섬, 완도 산 위에 있는 절로 내가 왜 그 많은 절 중 거기에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내 인생 최고의 절이다. 신흥사는 스님이 2, 3분만 계시던 작은 절이었고, 절에서 일하시는 종무원도 2, 3분 정도 계셨던 것 같다. 크고 유명한 절에서는 템플스테이를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구성해 한 기수에 20, 30명씩도 함께 진행한다고 알고 있다. 반면 신흥사는 크기도 작고 사람도 적어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없었고 108배만 두어번 했던 것 같다. 그외에는 놀거나 이해도 안 되는 반야심경 읽어보려다 때려치고 귤을 까먹으며 밤하늘 별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처마에 누워 하늘을 보면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별이 내게 인사짓고는 했다.

학생일 때만 누릴 수 있는 게 있다. 내가 갔던 때가 하필 또 템플스테이 비수기여서 절에 손님이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스님들과 종무원이 나를 많이 챙겨주셨다. 스님들 식사를 마련하시는 보살님이 계셨는데 한 번은 날 따로 불러 수육을 삶아주셨고 같이 나눠먹었다. 아마 아들같이 느껴지셨나보다. 그때의 정이 참 따듯했다. 절의 총무로 일하시던 분은 나를 데리고 며칠을 완도 구경을 시켜주셨다. 장보고 박물관, 바다 전망대 등등. 전망대에서 바다에 검게 펼쳐진 사각형 망을 보며 저게 무엇이냐고 여쭤봤을 때 전복을 양식하는 곳이라고 하셨고, 저런 곳에는 보통 해양 재해를 대비한 보험을 들어놓는다고도 들었다. 전복이 양식이 되고, 해양 재해도 보험의 대상이 된다고 알게 되었다. 그분과는 산책을 하고 산도 타며 여러 이야기를 했다. 그분은 역사를 석사인가, 박사인가 전공하셨는데 조선시대 역사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보통 ‘태종태세문단세’하며 조선시대 왕은 이름이라도 아는 경우가 많은데, 그분은 왕후의 이름까지도 다 기억하시고 설명하셔서 ‘역시 전공자구나’했다. 본인 이야기도 해주셨다. 공부를 꽤 잘했던 본인이 역사를 전공하려 할 때 누나가 법대를 가라고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도 본인의 의지를 관철했는데,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본인의 선택이 옳았다고 말하실 줄 알았던 그때의 나는 마냥 순수했나보다.

혼자 있으며 스님들과 차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때 처음 차를 접해본 것 같다. 스님과 둘이 앉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니… 참 접하기 쉽지 않은 귀한 기회였다. 내가 두 분 정도와 차담을 하며 느낀건 스님도 결국 사람이라는 것. 보통 스님들 방에서 차담을 가졌는데, 안에 TV도 있고 물어보니 세탁기도 있다고 한다. 잘 몰랐던 나는 이분들에게서 좀더 올드스쿨 방식의 삶을 기대했나보다. 그치, 깨달음의 조건이 비문명일리가 없잖아. 여기서 한 번 깨달음을 얻었고, 스님마다 성격이 다 다르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한 분은 진짜 철학적인 분이었다. 출가 이전 어릴 때 나무를 보며 ‘이것은 나무이되 나무가 아니다’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가 생각났지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고 이분은 종교인이 잘 되셨구나 생각했다. 한 분은 대단히 현실적인 분이었는데, 당시 대통령 탄핵 정국이었고 관련 이야기를 직접 꺼내시면서 시사인? 이런 잡지를 구독해서 도와줘야 한다고 해서 인상깊다. 난 종교인은 현실에 아예 관심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과거 ‘승병’이 있었던 역사를 보건대 종교인이라고 현실 감각, 정치 신념이 없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지만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깨달음을 얻을 때, 계기는 였다. 차를 계기로 스님과 대화하고 교감할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신흥사에는 다방이 있었다. 돈을 받지 않고 무인으로 운영되는 소소한 다방이었는데 일과 시간에 열어 손님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차를 마실 수 있다. 나도 하루에 한 번은 꼭 들렀다. 차가 대단히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산 위의 절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통유리가 벽면에 놓여 차를 마시며 바다를 볼 수 있었던. 그… 한 모금 홀짝이고 바다의 위아래를 훑으면 지나가는 배도 보이고, 지나가지 않고 묵묵히 서있는 여러 섬도 보인다. 그렇게 내 마음에 감정이 철썩 부딪히기도 하고, 고요히 비켜가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다방 안에서 멍하니 바다를 보며 차를 마시면 취업 등 나를 괴롭히는 상념이 잠시나마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2.2. 갈라파고스에서의 달콤한 사랑 고백

2018년 갈라파고스에 한 달 정도 있었다. 찰스 다윈을 존경하기에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싶었다. 학생으로서 큰 마음 먹고 비싼 돈 주고 비행기 표를 예매하니 출국 날짜가 다가왔을 때 결국 준비를 하게 되더라. 남미가 처음이던 나는 겁이 났고 철저하게 여행 준비를 했다. 여기저기서 남미에 관한 괴담이 들리고 부모님마저 ‘거기 사람이 사냐’ 하실 정도로 갈라파고스는 여행 후기도 적고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지도 검색 및 종이에 출력해 지도 위치 등을 찝고 인터넷의 거의 모든 후기를 읽어보는 등 철저히 준비했는데, 가보니 말도 안 되게 평화로운 지역이었다. 새벽에 돌아다니거나 그곳에서 사귄 친구들과 산에서 1박을 캠핑하는 등 지금 생각하면 다소 위험한 행위도 많이 했다. 왜일까 생각해보면, 범죄도 그를 지탱해주는 지역 경제력이 바탕되어야 한다. 인구 5만명이 안 되는, 섬이라 내륙으로 더 도망칠 수도 없는 곳은 범죄자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으리라.(마을을 벗어나면 비개발된 숲지뿐이다) 아무리 그렇지만 다음에는 그렇게 여행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갈라파고스는 생물 고유종이 많아 유명하고, 그래서 야생동물을 철저히 보존한다. 동물을 사냥해서도 안 되고 민간인이 함부로 만져서도 안 된다. 그래서 동물이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항구 근처에서 바다사자가 벤치에 누워자거나 부둣가에서 펠리칸이 인간을 위협하고 거북이가 도시 안쪽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갈라파고스에서 인간이 살 수 있도록 개발된 지역이 10% 미만이고 그외에는 무인도인데, 크루즈 여행을 하면 그곳을 갈 수 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신혼여행으로 참 좋겠다고 느꼈는데 관심 있는 분은 이 포스트를 참고 바란다. 물론 당시 가난한 나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운 좋게 2주 정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하며 지낼 수 있었다. 숙식을 제공 받으며 체크아웃 이후 방을 청소하거나 그외 잡무를 했는데 그곳은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아버지는 안 계시고 내 또래의 남성 친구가 사장으로 예약 처리나 접객을 했고 어머니와 20대 초반의 여동생은 그외 게스트하우스를 관리했다. 난 주로 어머니와 여동생을 도와 체크아웃 이후의 방을 청소하고 빨래를 했다. 게스트하우스 객실 밖에 넓은 정원이 있었는데 나무가 많고 각종 식물과 꽃을 잘 관리되어 아늑했다. 작은 정자와 그 옆에 해먹이 있었는데 난 그때 해먹을 처음 써봤다. 해먹에 누워 책을 읽으면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식사는 하루에 아침이나 저녁, 랜덤으로 한 끼를 주셨는데 다른 한 끼는 시장의 큰 만두 같은 음식을 2불 주고 사먹었다. 그렇게 지내며 하루에 5불 아래로 소비하며 쓸 수 있었는데 그때 성인 이후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몸은 가벼웠지만 마음의 안식은 충분했으니까.

식사를 하면 보통 차 또는 커피를 후식으로 주셨다. 그때그때 마시고 싶은 것을 마셨는데 하루는 식사 후 사장의 여동생이 ‘té o café?’(차 마실래?, 커피 마실래?)라고 물었다. 나는 차가 마시고 싶었고 ‘Quiero té’(I want tea)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은 스페인어에서 사랑 고백할 때는 ‘Te quiero’(I love you, 직역하면 I want you)와 발음와 문장 구조가 비슷했다. 그 친구는 기겁을 했고 나도 적잖이 당황했다. 그때 같이 손님으로 일하던 빅토르가 다가와 ‘Quiero EL te’(I want the tea)라고 정정해주었다. 아 그렇구나… 이런 차이가 있다니.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어, 스페인어에서 정관사를 잘 쓰려고 노력한다. 친구야, 너의 그 “에-에에에엑~” 하던 그 기겁하던 목소리가 지금도 가끔 생각난단다. 잘 지내지?

여행에서는 결국 사진만 남는다고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사진에 남지 않아도 이렇게 강렬하고 재미있던 추억이 있을 수 있어. 여기도 계기는 차였다.



3. 사회인이 된 후

이때의 추억은 사회인이 된 후에도 간간히 찾아왔다. ‘차를 제대로 마셔봐야겠는걸?’, 이런 느낌은 아니고 막연했다. 차 관련 모임을 몇 번 가보기도 했다. 멀쩡히 다니던, 남들에게는 선망의 직장을 관두고 찻집에서 일하는 등 차에 진심인 분도 뵈었지만, 나와는 왠지 연이 닿지 않았다. 사람이 닿지 않으니 차도 닿지 않았다.

일본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일본의 주요 역사 유적지를 가볼 생각이다. 난 해외 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언어와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가는데, 재작년 한 달 동안 일본 여행할 때는 퇴사 후 급하게 여행 가며 그러지 못했다. 그런 준비를 하지 못하고 출발했고, 나중을 기약하며 일부러 고대, 중세 일본 역사의 주 무대인 교토, 오사카, 도쿄 등을 피해 시골이나 섬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제 때가 되어 여행을 염두에 두고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데 책에서 뜬금없이 “다도” 이야기가 나왔다. 에도(도쿄) 막부 시절 다기로 손님을 정중히 대접하는 다도 문화가 귀족의 주요 문화였고, 이후 일반 서민 사이에서도 유행이 되었단다. 호오… true story냐? 이때의 다도는 단순히 다기를 사용해 마시는 것을 넘어 호스트(호스트를 한글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와 손님 간 각자의 절차나 의식도 있었다고 한다. 이번에 여행 갔을 때 전통 다도 체험이 있다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잠깐 찾아보니 있는 듯 하다.

회사에 다도 동호회가 있다고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들어가지는 않고 가끔 후기만 읽어봤다. 주로 후기를 쓰시는 분이 내 취향 저격의 유머 드립으로 적으시길래 피식 거리며 재밌게 읽었는데 처음에는 활동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여행을 준비하며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결국 가입해 어제까지 두 번 활동했다. 내가 느낀 차는 맥주보다는 와인과 비슷하다. 난 맥주를 맛도 맛이지만 그 시원함과 사람들과의 북적대는 즐거움, 은은히 취해 머리가 둥둥 떠다니는 재미로 마신다. 반면 와인은 다르다. 와인은 가끔 마시는데, 처음 따랐을 때의 색, 냄새, 이후 맛을 음미하려 한다. 시각, 후각, 미각. 인간의 만족을 책임지는 가장 큰 세 감각. 동호회에서 차를 마실 때 아무래도 집에서 마시던 저가의 차와는 달라서일까, 이 셋이 즐거웠다. 특히 차 냄새를 눈 감고 맡아보면 그림이 그려지는데, 푸른 잎이 지나가고, 노랗고 불그스름한 장미빛 화실도 지나간다. 와인을 마시며 시트러스향이 느껴진다느니, 오크향이 느껴지니 하는 게 이제 이해가 된다.

이제는 차가 좀 더 가까이 느껴진다.


4. 같이 나누고 싶은 차

난 책 나눔을 좋아한다. 돈 쓰는 재미를 못 느끼는 내게 있어 몇 안 되는 낭만인데, 물질과 달리 정신적 가치는 나눌수록 늘어나니까. 비싸고 귀한 책을 나누면 결국 후회하지만 일단 나눔한다. 난 안 하고 후회하기보다는 하고 후회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

지난 회사에서 커피를 직접 갈아 내려주시는 분이 있었다. 커피를 갈고 내리고 마시는 짧은 시간 동안 같이 소소히 대화하는 게 참 즐거웠는데, 바쁜 일상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리는 달콤한 시간이었다. 그분이 보고 싶다. 대학원 가신다고 퇴학하셨는데 얼추 마치셨을까. 이제는 내가 그렇게 해야겠다. 동호회에서 듣고 좀 찾아보니까 기능성 있는 수준의 다기가 엄청 비싸지는 않더라고. 가족, 친구, 동료와 차를 나누고 싶다. 『오래된 미래』에서 지적하는, 문명의 발달로 시간을 대단히 절약하는 현대인이 되려 더 바쁘고 조급한 삶을 살아가는 역설을 잠시나마 잊는 시간을 주고 싶다. 책은 기분 좋게 나눔하고도 돈 생각하면 아쉬울 때도 있는데, 차는 좀 덜할까? 그건 모르겠지만 함께하는 당신과 좀더 교감할 수는 있겠습니다.


5. 마치며

글을 쓰면서 느낀 건, 차에 관심이 생기고 찾아보게 된 건 어떤 객관적인 기준이나 구체적인 목적 때문이 아니다. 추억 때문이고 결국 사람 때문이다. 그래서 글 초반에 장황한 여러 이야기가 들어갔다. 추억을 돌아보느라 길어졌다. 흐음, 글이 불필요하게 길어진걸까. 너무 감상적으로만 접근한걸까. 이렇게 생각하니 동호회 활동을 시작하거나 다기를 찾아본 것도 일시적인 바람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나,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단다 얘야. 신흥사 사람들, 갈라파고스의 당신들, 음, 사랑하는 건 아니고 많이 좋아했던 전 회사 동료들. 당신들을 추억하며 글을 씁니다. 저와 차나 한잔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