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 주민과의 대화

라다크 주민과의 대화

2019, Mar 03    

0. 들어가며


전편 ‘어느 은퇴한 인도인 은행원과의 대화’에 이어 이번엔 인도 라다크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와 대화한 내용을 싣는다. 원문에도 나오지만 라다크(Ladakh) 지방은 인도 소속임에도 인종 자체가 우리에게 익숙한 인도인과는 다른, 어떻게 보면 이색적인 곳이다. 이곳이 마날리와 함께 참 천국같은 곳이었는데… 16시간의 낭떠러지 절벽을 오르는 버스를 타고 간 위험천만한 고산지대이지만 꼭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다시 갈 수 있을까?

포스트를 시작해보자.

라다크 시내 전경

1. 라다크 주민과의 대화


1.1. 들어가며

이 글을 쓰는 시간은 16년 7월 21일 오후 11시. 한국 사람들은 슬슬 잠을 청할 시간이다. 나는 지금 인도에 있고 별이 많이 보이는 라다크 레(Leh, 라다크에서 가장 큰 도시)의 숙소에서 글을 쓰고 있다. 이전에는 인도 할아버지와 대화를 했다면 이번에는 숙소 라다크 아주머니와 대화를 했다. 라다크는 인도에 속해 있는 곳이지만 인종, 언어, 지역 접근성이 매우 다른 지역이다. 그래서 라다크 사람들의 인도인으로서의 자각 정도와 라다크 사람들의 삶, 종교에 대해 질문들이 많았다. 그러던 찰나 저녁 먹고 숙소로 들어가던 중 주인 할아버지가 공짜 짜이(Chai, 인도식 밀크티. 정말 많이들 마신다;)를 주신다고 부르셨고 게스트하우스 가족들이랑 같이 빵을 먹고 짜이를 마시게 되었다. 31살 누나 같은 아주머니와 그녀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2살, 4살의 귀여운 두 딸이 있는 소박한 가족과 같이 차를 마시는 것이 참 행복했다. 그 분들은 한국 사람인 나에 대해 질문이 많으셨는데 아버지, 어머니의 직업, 내 직업, 전공, 집의 소유 여부, 심지어는 북한의 지도자의 이름과 남한과 북한의 분쟁 여부까지 물어보셨다.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시면서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것 같았다. 그 김에 난 인터뷰를 해도 되냐고 물었고 Sushil 할아버지와의 인터뷰 글과 사진을 보여주었다. 너무 감사하게도 그 아주머니(이하 누나)는 흔쾌히 질문을 하라고 하셨고 약 20~30분간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지만 이 글은 라다크를 대표하는 것이 아닌 라다크 주민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내가 잘못 이해했거나 해석을 잘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라다크 사람들 중에는 이런 의견도 있구나’ 정도로 참고용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그리고 이 글은 같은 현장에 있던 공채원 군(경영학과 11학번)의 감수를 받았다.

1.2. 인터뷰 전문

Q0.
박성환(이하 ‘박’) : 이름이 무엇인가?
누나(이하 ‘누’) : Ache Nilza이다. Ache는 당신과(박성환)의 관계에서 내가 더 나이가 많기 때문에 쓰는 표현이고 Nilza가 내 이름이다.

라다크 누나와 함께

Q1.
박 : 라다크는 인도의 영토이고 라다크 사람들도 인도 국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것은 라다크 사람들이 인도 사람이라고는 하나, 인종, 언어, 사는 곳이 너무 달라서 실제 라다크 사람들이 자신들을 인도인이라고 생각할지 물어보고 싶다.
누 : 네 말대로 우리는 인도인과 정말 다르다. 생긴 것도 인도인들보다는 당신들(나와 채원)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우리는 몽골족 얼굴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인도 사람들과 우리는 같은 글을 쓰지만 언어는 다르다. 거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인도인이다. 인도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교 국가인 파키스탄이나 중국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Q2.
박 : 그렇다면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할 때 다른 인도 사람들처럼 ‘나마스떼’(Namaste)라고 말하는가?
누 : 전혀. ‘쥴례이’(Juley(Joo-lay))라는 말로 만날 때, 헤어질 때, 감사를 표현할 때 모두 통용된다.

Q3.
박 :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저)라는 책을 아시는지 모르겠다. 불과 몇 십년 전 세계에 개방된 후 라다크는 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이 변화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하다.
누 :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여행객이 오면서 우리는 돈을 벌게 되었다. 그건 장점이다. 그러나 지나친 서구화(westernization)으로 인한 문제도 있다. 길거리 젊은 여성들을 보면 서양 사람들과 똑같이 하고 다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청바지 등) 우리의 전통과 관습이 옅어지는 것이 단점이다.

Q4. 박 : 아까 라다크어와 힌디어가 다르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학교에서 학생들이 둘 다 배우는가?
누 : 그렇다. 라다크어, 힌디어, 영어 모두 배운다.

Q5.
박 : 라다크의 여름은 선선하고 참 좋다. 겨울에는 날씨가 어떤지 궁금하다.
누 : 1, 2월에는 영하 25도 밑으로도 내려간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있는 사람들은 찬디가르, 마날리, 델리 등으로 휴양을 떠나고 없는 사람들은 집에서 TV를 보는 등 시간을 보낸다.

Q6.
박 : (옆에 있는 TV를 가리키며) TV에 인도 본토 사람뿐 아니라 라다크 사람도 나오는가?
누 : 그렇다. 우리만의 채널도 있다.

Q7.
박 : 라다크에서는 아이들이 학교를 몇 살 때 가는지 궁금하다.
누 : 4살 때부터 학교를 다닌다. 당연히 기초적인 것부터 배운다. 우리는 유치원 같은 것은 있지만 잘 안 보내고 집에서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Q8.
박 : 현지 인터넷 사정이 별로 안 좋은데 라다크 사람들은 주로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가?
누 : 음… 뚜렷하게 없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면 이 분들은 7, 8살 때 학업을 중단하고 바로 일을 하셔야 했기 때문에 글을 잘 읽지 못하신다. 그래서 독서 등의 취미도 없다. 나 같은 경우에도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사무실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일하고 아이들도 키워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정말 없다. 요즘 사람들은 독서의 취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Q9.
박 : 길거리에서 작은 손수건들을 이은 만국기 같은 것을 보았다. 그것의 의미가 궁금하다.
누 : 그것들은 나쁜 영혼들이 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또 사람이 아프거나 할 때는 마트에서 그것을 사서 집 주위에 둘러쳐 놓기도 한다. ‘옴마니 반메홈’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라다크 만국기

Q10.
박 : 라다크는 불교를 믿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달라이 라마를 존경하는가? 그리고 그의 사후 그의 힘과 유지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는 것도 믿는지 궁금하다.
누 : 당연히 존경한다. 그리고 힘과 유지가 전달된다는 것도 우리는 믿는다.

Q11.
박 : 라다크는 힌두교가 아닌 불교를 믿는다. 그렇다면 소고기나 돼지고기도 먹는가?
누 :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한다. 그런데 고산지대에서 생활하는 데는 힘이 들어서 우리도 최소한의 고기는 먹는다. 그래서 닭고기와 양고기는 먹지만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먹지 않는다.

Q12.
박 : 주말 등에 절을 많이 찾는가?
누 : 그렇다. 나는 그렇게 신실한 편은 아니라서 자주 가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많이 간다. 그리고 꼭 우리가 가는 것뿐만 아니라 스님들이 한 달에 한 번씩 가정을 방문해서 축복과 기원을 해주기도 한다.

Q13.
박 : 아침에 당신의 아버지가 향을 피워서 집 안을 돌고 계신 것을 봤는데 그것은 종교적 의미인가?
누 : 그렇다. 또한 집 안의 공기를 정화하는(refresh) 의미를 가지고 있다.

1.3. 인터뷰를 마치며

개인적으로 이 글은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지난 인도인과의 글에서는 인터뷰 전 인도의 역사, 문화, 카스트에 대한 책을 읽고 간 상태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깊이 있는 질문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번 인터뷰에서는 내가 라다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라다크에 대해 깊게 파고 드는 질문이 나오지 못했다. ‘『오래된 미래』만이라도 읽고 갔어야 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글이 더 딱딱해 보여서인지 이 글이 더 재미있다는 의견도 참 감사하지만 난 인도에 대해 배우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다음에는 더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순박한 사람들이 어떻게 연애를 하는지를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것이 너무나 아쉽다. 딱딱한 질문만 하는 것 같아 고민이기도 한데 다음엔 더 다양한 영역을 파고 들어야겠다. 고산 생활 속 언제나 볼그랗게 상기되어 있는 그들의 뺨만큼이나 풋풋하고 순수한 마음들이 오가는 연애를 하지 않을까? 갈 곳 없는 물음만 띄워본다.


참고로 로고 사진은 주말에 달라이 라마가 시내에 온다는 소식에 전통복장을 차려입고 사원을 찾는 하숙집 조부모 내외, 그리고 누나의 딸 재즈단이다. 그 아이가 정말로 귀여웠는데…

2. 마치며


이상으로 인도 여행에서 작성한 두 인터뷰 포스트를 모두 끝냈다. 지금 생각하니 인도에서 보낸 그 시간이 내게 정말로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그때는 몰랐다. 마냥 더워서 위로 도망갈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시간이 주어진다면, 더 의미 있게 쓸 수 있을텐데.

라다크 편은 아쉬움이 진하게 남긴다. 원문의 1.3.의 이유 때문이다. 라다크라는 지방을 너무 모르고 갔다.

나는 역마살이 조금 있는 것 같다. 인도 여행기는 여기서 마치지만, 다시금 나가서 그곳 사람들을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 그 날이 오기까지 나는 더 단련하고 강해져야겠다.

이상 포스트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