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굴레

성인의 굴레

2025, Jan 26    
  • 인생 첫 소설입니다.

내일이 졸업식이다. 교복을 벗어버릴 수 있는, 정말 마지막 등교일이구나. 수능을 마치고 대학도 정해졌다. 내 인생만큼 모남 없이 적당한 수준의 학교의 그냥저냥 과를 가게 됐다. 지루하고 길었던 수능생활을 마치고 망나니같은 삶을 살았다. 나처럼 먼저 대학교가 정해진 친구들과 생애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속초에서 배 타고 러시아를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후훗. 어제는 준식, 재영과 건대에서 술을 거하게 했다. 다음날 졸업식이 있으니 일찍 오겠다고 엄마와 약속했지만 뜻처럼 되지 않지. 아니 나도 이제 성인인데 꼭 엄마 말대로만 해야 하는거야? 아니잖아? 다음날 엄마의 잔소리가 걸리긴 하지만 뭐 알아서 시간 보냈다. 3시인가, 4시인가에 집에 와 대충 씻고 잠들었다. 눕고 나서도 짜증이 났다. 성인임에도 아직도 시간 단속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짜증났고, 졸업식만 끝나면 정말 이 미성년 생활도 끝이련다.

알람 소리가 크게 울렸고, 옅은 신음 소리와 함께 부스스 흔들며 일어났다. 젠장. 졸업식이 두고두고 짜증이 난다. 10분만 더 누워있고 싶지만, 졸업식 리허설을 위해 더 늦을 수는 없다. 가족들 다 자는데 급하게 씻고 엄마와 한 약속대로 깔끔하게 단정했다. 졸린 얼굴을 떠안고 면도도 했고, 할 수 있는 멋을 다 부렸다. 엄마는 마지막 학생의 모습을 사진에 잘 간직해야 한다고 하신다. 뭐 이리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싶지만… 에효.

등교길에 나섰다. 2월 초, 날이 많이 풀렸지만 7시 이른 아침이기도 해서 생각보다 쌀쌀하누나. 잠이 확 깬다. 새벽에 쓴 목도리를 까먹고 나왔는데, 돌아가서 가져올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걷는다. 이 길을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매일 걸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이 지구 표면적 수백만 제곱킬러미터에서 극히 일부분을 반복해 한평생 돈다. 그 사실에 환멸을 느끼며 등하교를 했는데 이제 정말 끝이구나. 순간 즐겁기도 한데, 마음 한켠에서는 답답함이 따른다. 어제 너무 많이 마셨나보다. 학교가 가까워지면서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이 속속 보인다. 이 날에 모인 학생은 다 나와 같은 학년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아는 애들이면 인사라도 할까 했는데, 아싸인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친구가 많지 않았다. 뭐 알아도 이제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3년을 함께한 우리는 한 번의 수능으로, 대학교로 갈라져버렸는걸. 의복의 사회적 역할 중 하나는 소속의 구별이란다. 우리는 곧 교복을 벗어던지는걸.



정문을 지나 교실로 향한다. 대강당이 보인다. 미션스쿨이었던 우리 학교에서는 금요일 1교시를 채플로 시작했다. 1, 2, 3학년이 대강당에 모두 모여 예배를 보았는데, 신실하지 않은 대부분의 학생에게는 전날 늦은 야자나 학원 수업으로 놓친 수면을 보충하는 꿀같은 시간이었다. 대강당은 지은 지 오래돼지 않아 자리도 참 편했다. 어지간한 영화관 좌석처럼 편하고 푹신했으며 좌석간 간격은 충분히 넓어 좌석에 푹 누워 패딩을 입고 숙면을 취하곤 했다. 식당도 보인다. 4교시가 끝나면 전교생이 부리나케 달려가던 그곳. 특에 박힌 식판과 특에 박혀 로테이션 도는 메뉴는 틀에 박힌 학생의 삶을 여실히 대변했다. 그 메뉴를 맛있게 비우며 짜인 틀에 순응하던 우리가 있었다. 교실이 위치한 건물에 다다랐는데, 잠시 멈춰 건물을 바라봤다. 몇 년을 다녔는데, 단 한 번이라도 교정을 제대로 눈에 담아보지 않았구나. 빛 바랜 빨간색 벽돌 건물은 그 연식과 지나간 학생 수를 가늠케 하고 창문을 제외하고 건물벽을 종으로 횡으로 뒤덮은 담쟁이넝쿨은 그 시간을 아우르며 학생을 굽어보고 있다. ‘이 담쟁이넝굴이 학교 미관에 오히려 안 좋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졸업하는 내가 신경쓸 바는 아니지. 무심히 4층 내 교실로 향한다.

나는 어디든 일찍 도착하는 편이다. 도착하니 10명 안 되는 아이들이 와있다. 정말 오랜만에 보네, 하며 인사를 나눴다. 다들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인지, 학교에 오는 게 어지간히 짜증이 나서였는지 힘이 빠져 보였다.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핸드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넘기며 그 시간도 넘기고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였을까, 한 달만에 만난 아이들과 농담을 주고 받으며 놀 기분이 아니었다. 바로 교실 정중앙 자리에 앉았고, 온몸의 힘을 책상에 풀고 멍하니,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는 매끈한 칠판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기를 바란 것처럼.

속속들이 친구들이 들어왔고 교실은 점차 시끄러워졌다. 담임선생님이 졸업장 수십여개 더미의 아래를 양손으로 받치고 힘겹에 들어오셨다. 날이 날이라 그런지 깔끔하게 면도하셨는데, 이 분이 이런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분이었나? 내심 놀랐다. 회색 정장 차림에 녹색 타이를 매셨고, 중요한 날에 한 번씩, 한 10여 년은 신으셨을 것 같은 광낸 검정 구두를 신고 계셨다. 쫙 빼입은 그 모습은 평소의 회색 맨투맨에 검은 가디건을 입고 건들건들 복도를 걷던 40대 장년 아저씨와는 확연히 달라보였다. 선생님은 졸업장을 교탁에 쌓아두시고, 졸업식 준비를 위해 다들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다. 졸업식에는 부모님 및 가족이 참여하기 때문에 다들 똑바로 앉아있고, 조용히, 차분히 있으라고 하셨다. 회순을 보건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는걸?

한.. 30분쯤 있다가 부모님들도 교실에 들어오시기 시작했다. 학생과 교사가 아닌 사람들이 교실을 가득 채우는 상황이 생경했다. 다양한 복장과 연령대의 부모님, 형제자매, 심지어 조부모가 오신 친구도 있다. 가족은 교실의 뒤를 쫙 채우셨고, 창문이나 정문으로 고개를 내미신 분들도 있었다. 정문에는 선생님이 있어 아무래도 직접 들어오지는 않았다. 친구들과 부모님이 서로 자신의 아들과 부모님이 어디있는지 눈으로 쫓았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부모님과 동생도 왔다. 사랑은 여러 가지 관계의 애정을 포함한다. 가족의 사랑, 즉 가족애를 보고 싶다면 멀리 갈 필요 없다. 학교에 오면 된다. 평소 나보다 일찍 출근하시는 아버지의 양복은 정말 오랜만에 본다. 평소 스타일대로 목도리를 목에 두르지 않고 그냥 걸쳤고, 나를 보고 생긋 웃으시는 그 모습에는 어떤 행복감이 깃들어있었음을 이제는 안다. 어머니는 어디서 산 모조 모피코트에 중요할 때 한 번 쓰시는 나비 모양의 브로치를 가슴팍에 달고 오셨다. 모피코트는 가짜지만 내 엄마의 사랑은 진짜다. 그런 이상 모피코트는 이미 충분히 진품이었고, 그 아름다우신 미소에 나도 웃음이 났다. 중학생인 동생은 교복을 입고 왔는데, 동생이 교복 입은 모습을 이 날 처음 봤다. 평소 내가 일찍 등교하고, 야자 등으로 인해 집에도 항상 늦게 왔으니까. 집에 도착할 때면 동생은 평상복을 입고 TV를 보고 있었다. 오늘 교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알겠다. 이미 이 존재는 하나의 충분한 인격체구나. 나 고등학교 생활만 한다고 이 사람을 제대로 볼 여유를 가지지 못했어.



졸업식이 시작됐다. 선생님은 가족들에게 인사하며 졸업을 축하하고 앞으로를 응원한다는 평이한 말씀을 하셨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날을 위해 갈고 닦기라도 한 듯 말씀을 썩 잘하셨다. 교실 위 TV에서 교가가 흘러나와 다 같이 마지막으로 교가를 불렀다. ‘해 뜨는 고지, 그 언덕 넘어…’ 로 시작하는 교가는 가사를 보지 않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불렀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부를 수 있을 법하게 많이 부른 이 노래는 몇 년 뒤, 서서히 잊혀가겠지. 교장선생님이 TV에 나오셔서 축하의 인사를 하셨다. 안 좋은 화질 속의, 이미 많은 졸업을 해보신 백발의 노(老) 선생님은 학생을 축하하는지, 가족을 축하하는지 모를 맥없는 이야기를 하셨다. 지루했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당신 포함 우리 모두를 축하한다고. 선생님이 한 명씩 호명하며 졸업장을 나눠주셨다. “축하한다.” 짧게 한 마디씩 하며 학생과 악수했다. 내 차례가 오기 전까지 한 명 한 명 졸업장을 받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졸업장을 나눠주는 선생님의 그 말씀은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뭐라고 하기 애매한데, 나눠줄 때의 학생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그 눈빛과 평소보다 어색한 말투에서 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을 해보면, 그건 내 마음을 선생님에게 투영한 게 아닐까. 내 차례가 되어 졸업장을 받았는데, 왠지 선생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선생님은 성적이 비교적 좋았고 천진난만한 나를 친근하게 여겼고, 특히 수능을 보고는 내 애매한 성적을 가지고 여러 가지 선택지로 이야기를 같이 많이 했다. 난 선생님이 제안한 재수를 선택하지 않았는데,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도 내 선택이 맞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졸업식이 끝났다. 이제는 사진을 찍는 시간이다. 가족 넷이 다 같이 사진을 찍는 게 오랜만이다. 나를 중심에 두고 부모님과 한 번, 엄마와 한 번, 아빠와 한 번, 동생과 한 번, 가족 넷이 한 번 찍었다. 연분홍 포장지에 감싼 꽃다발과 졸업장을 양손에 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손이 편하지 않아 어색했다. 그래도 많이 웃었다. 웃으려고 했다. 이제는 친구들과 찍었다. 친한 친구들과 한 컷씩, 서로 수고했다는 덕담을 주고 받으며 웃으며 찍었다. 작은 거인 반장 현준이. 야무진 이 친구를 참 좋아했다. 현준이가 흩어지는 아이들을 모아 5, 6명이 같이 사진도 찍었다. 아직은 우린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고, 그랬기에 다른 마음없이 행복하게 사진 찍을 수 있었다. 집 구석을 아무리 찾아봐도 졸업식 사진이 어디있는지 안 보이는데, 이 5, 6명이 같이 사진 찍은 그 순간은 확실하게 기억이 나서 가끔 떠올려보기도 한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교정에서 가족과 사진을 한 번 더 찍자고 했다. 교실 건물 1층에서 한 번, 운동장을 뒤로 한 번. 어머니가 이번에는 졸업장을 펼쳐서 사진을 찍으라는데, 아뿔싸! 졸업장을 두고 왔구나. 아마 책상 아래 서랍에 넣어두고 꺼내오지 않은 듯하다. 가져오겠다고 하고 교실이 있는 4층까지 빠르게 뛰어올라왔다. 그렇게 교실에 도착했다. 교실 뒷문과 앞문은 다 열려있었고, 교실 오른쪽에 위치한 뒷문에 다다랐다. 바로 들어가려는데, 엇. 멈칫했다. 누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아니, 도리어 아무도 없었고, 이 교실이라는 장소에 아무도 없는 상황을 처음 봐서 놀라서일지도 모르겠다. 문에 오른손을 얹고 빈 교실을 바라보았다. 교실 왼편에 위치한 창문은 열려있었고, 흰 모직 커튼은 선선히 부는 바람에 교실 안쪽으로 폭넓게 파고들었다. 정오의 맑은 햇볕은 창가 바로 옆 책상에 따듯하게 내리쬐었으며, 늦겨울의 다소 쌀쌀한 바람은 내 몸에 부딪치며 대조를 이뤘다. 아무도 없었다. 고요했다. 커튼이 바람의 세기에 따라 이리저리 펄럭이며 흔들리는 소리마저 들렸고, 두 달여간 청소되지 않은 교실의 먼지가 구르며 벽에 부딪치는 소리까지 들렸다. 교실을 천천히 훑었다. 교실 뒤편에 있던 가정통신문 게시판. 그 위에는 ‘Merry Christmas’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는데 이게 아직도 붙어있다니. 그러고보니 크리스마스 즈음 반장이 선생님께 말을 듣고 귀찮아하며 대충 달았던 기억이 난다. 이게 아직도 있네. 누구 하나 뗄 생각도 안했구나. 남고 참 삭막하다. 그 아래 위치한 학생 각자의 나무 수납장. 몇몇은 열려 있고 다수는 닫혀 있다. 닫혀 있는 서랍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싶지만 이제는 열어도 아무것도 없겠지. 모두가 성인이 되었고 학교를 떠났으니까. 알고 있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교실 중앙으로 옮긴다. 친구들과 부모가 지나간 발길로 책상들은 정돈된 격자 형태를 잃고 어지러이 자리잡았지만 왠지 밉지 않았다. 책상에는 졸업식 준비한다고 급하게, 어설프게 지운 낙서의 번짐이 그대로 남아있지만 밉지 않았다. 교탁도 있다. 하루에도 선생님 몇 분이 50분씩 대여해 쓰시던 그 교탁만 제자리에 우뚝 서 교실을 정면에서 주시하고 있다. 무엇을 보려고 하는지, 무엇을 견지하려는지 난 알턱이 없다. 하지만 그 교탁만큼은 몇 년이 지나도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남아있으면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스트레스 받은 고등학생 3년의 시간에는 항상 이 교실이 함께했다. 그래, 고등학생 생활의 무대는 이 교실이었다고 해도 맞는 말이다. 교실에 착 달라붙어 떠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나는 정말 이 교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왜 마냥 행복하지 않지? 난 왜 교실을 바라보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지?

고등학교 많은 순간이 있다. 수업 때 만우절로 선생님 골리던 순간들, 친구들과 매점에서 빌어먹을 불량식품 먹으며 낄낄대던 시간, 밥 1분이라도 빨리 먹겠다고 불필요하게 식당으로 달리던 시간. 친구과 말다툼하고 서먹해졌고, 아직까지도 화해 못해 후회하는 시간도 있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못 본 채하며 발길을 돌리던 나도 있다. 야자하다 스트레스 받으면 친구들과 밤에 학교를 돌며 산책하고 선생님께 걸려 혼났던 순간도 있다. 시험 하나에 조마조마하고 1점에 울고 웃던 순간도 있고, 전교 1등 한 번 못해봐 찝찝하고 슬펐던 순간도 있다. 친구와 야자 째고 동네 김밥천국에서 라볶이 소스에 김밥을 찍어먹던 그 순간도 있다. 난 거기 돈까스 김밥을 참 좋아했지. 수능을 보고 가채점한 후, 만세 소리를 내지르지 못할 같은 처치의 친구들과 PC방에 모여 일렬로 앉아 말없이 게임만 했던 순간이 있다. 엄마와 여러 대학교를 전전하며 논술 시험을 보러 가야했던 그 빌어먹을 순간도 있다.

그 모든 순간이 다 이 교실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교실에서 이뤄졌다. 그렇게 느꼈다. 너무나 많이 흘러가던 사건사고, 사람의 백색소음에 가려 체감하지 못했지만 다 이 교실에서 이뤄진 일이었어. 이 교실 자체를 이제서야 느껴보네, 다 끝나고 나서야.



졸업장을 찾으러 왔다는 첫 목적은 이미 잊어버렸다. 이 교실의 풍경을 담고 싶어서 그냥 가만히 교실만 보았다. 모습을 눈으로 담고, 눈을 감고 귀로도 담았다. 그렇게 몇 분을 바라보다 눈을 내리깔 수밖에 없었다. 성인의 낙인이 찍힌 나는 이제 알아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있을 때 잘할걸’이라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성인의 뻔뻔한 변명이 내게도 시작되었다고.

이 성인의 굴레에 압도되어 멍하게 교실 바닥을 바라보는데, 뒤에서 “야 뭐해”라고 툭 치는 소리가 들린다. ‘영준’이었다.

“밥 먹고 ‘인간의 굴레 PC방’으로 와.”

“아 그래, 연락할게.”

“근데 서서 뭐하냐?”

“그러게… 나도 모르겠다. 가자”

졸업장을 챙겨 교실을 떠났다. 뒷문을 닫고 나오며 안을 다시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렇게 난 교복을 벗었고, 성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