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기기증 서약 이야기

나의 장기기증 서약 이야기

2019, Oct 07    

아는 사람은 알지만 나는 진화를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20살에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그 유명한『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후 지금까지 진화를 공부하고 있고 심취해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유물론자가 된 것 같다. ‘구조가 중요할까, 개인의 능력이 중요할까?’, ‘인종별 부의 편중의 원인은 어디에 크게 기인하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에 나는 유물론적인 답이 가장 합리적이고 이롭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물론 인간 정신의 창의성과 특이성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큰 흐름은 틀리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인지 나는 장기기증에 거부감이 없다. 어차피 내 몸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예정인데 어차피 태워없앨 몸 재활용할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닐까? 내 정신은 몸에서 기인하고, 그 몸은 흙에서 기인하고 있으니… 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뿐이다. 사자 기준으로 그 뒤에는 영원한 소멸만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오늘은 내가 어떻게 장기기증 서약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글 흐름상 내가 진화론을 공부하고 유물론자가 됨으로써 장기기증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식으로 흘러갈 뻔했지만 실은 장기기증에 대한 생각은 고등학생 때부터 해왔던 것 같다. TV에서 장기기증에 대한 공익광고를 보며, 한 사람의 생명으로 여러 사람에게 생명과 생활을 주는 것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이건 뭐랄까 공리주의 입장에서 봐도 만족스럽고, 어렵게 생각 안 해도 애초에 손해보는 사람이 없고 이득 보는 사람만 있으니 그냥 더 좋은 것 아닐까 라고.

물론 그때는 생각만 했고, 실제 액션을 취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장기기증’이라는 단어도 내 기억에서 흐릿해져만 갔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을까? 한 4~5 년은 뒤의 일인 것 같다. 난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시련인데, 입대를 얼마 안 남기고서는 다들 그렇듯이 나도 방탕하게 시간을 허비한 것 같다. 아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현호와 내일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것 정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태워나가던 무렵, 나는 잊고 있던 ‘장기기증’을 떠올렸다. 계기는 모르겠다. 그냥 막연히 생각이 났다. 그때가 입대가 정말 얼마 안 남았었는데 나는 급히 장기기증 서약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알다시피 군대에서는 총이라는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개인화기를 다룬다. 또 어느 부대를 가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최소한 수류탄이라는 개인화기 중에서는 매우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게 된다. 실제로 훈련소에서 수류탄을 던질 때 나무갑옷을 입고 던진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군대에 있으면 사회에 있을 때보다 사망확률이 증가할 것이다’라고 막연하게 떠올렸다. 당연히 군대에 죽으러 가는 것은 아니지만, 확률적으로 또는 통계적으로는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입대 전에 반드시 사후 장기기증 서약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절차를 알아보았다.

찾아본 결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급하게 사후 장기기증 서약 과정을 마쳤다. 물론 이 서약은 사후 강제력은 없고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는데, 내 의지를 여러 번 피력했기에 가족이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다. 오늘 포스트를 위해 그때의 서약 기록을 확인해보니 등록일이 2012년 9월 11일이다. 내 입대일이 2012년 9월 17일이었으니 정말 급하게 신청한 것이다.


그때 등록하면서 스티커를 집에 보내주었다. 이 스티커는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에 붙여서 정말 다급한 순간에 이 사람이 장기기증 서약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organ donator sticker

근데 이 스티커에 집에 왔을 때는 이미 난 훈련소에 있었고, 스티커는 엄마가 받아보시게 됐다. 근데 어머니가 이에 꽤나 식겁하셨나 보다. 훈련소에서 한 달 훈련 후 가족 면회 때 어머니가 울먹거리셨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부모가 되면 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일을 되돌려보면, ‘통계적 사고가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조금만 더 생각할 수 있었다면 첫 휴가 때 신청을 할 수도 있었을테니까. 물론 당시 나는 이런 결과까지 예측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나의 장기기증 서약 이야기는 짧게 끝이 났다. 내 다른 블로그 포스트들은 Vim 기준으로 못해도 200줄 정도는 되는데 이 포스트는 30줄 정도밖에 안 된다. 참 놀라운데, 가끔 이런 날도 있을 수 있겠다 싶다. 다만 1000줄을 넘어가는 포스트도 쓰다가 요즘은 그렇게 정성을 들여 쓰지 않고 있는데, 1000줄까지는 아니어도 좋은 주제에 좀 더 정성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 주위에는 약자들이 생각보다 더 많고, 더 안타까운 것은 그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체에 이상이 있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분명 존재한다. 내가 만약 죽는다면, 어차피 꼬불칠 수도 없는 내 몸의 모듈을 이식할 수 있으면 사회의 가치는 올라가지 않을까. 내가 장기기증 서약자라고 하면 때로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는 식의 인식을 받을 때가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그 문은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당시 장기기증 서약할 때 ‘미리 써보는 유언’이라고 하여 내 가상의 유언(물론 법적 효력은 없다)을 쓸 수 있는 코너가 있었는데 당시 적은 내 유언으로 포스트를 마무리한다.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감사한 건 나를 사랑한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죄송한 건 그만큼 잘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죽어서 내 몸은 반드시 가능한 많은 모든 부위를 남김없이 기증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공간 차지하지 않도록 화장을 부탁드리고 그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내 물건 중 가족이 필요하지 않은 물품은 미천하지만 모두 기부하겠습니다.
마지막 소원은 가능하다면 대한민국 어딘가에 길이 길고 힘든 길에 제 이름이 들어간
벤치 하나 만들어지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죽어 없겠지만 대지 속에서라도 잘 토양화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행복했습니다.고마워요.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