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두고 느끼는 생각
졸업을 앞둔 나
나는 졸업을 앞두고 있다. 경영을 전공하고 영문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해온 것이 어언 4년(휴학은 제외). 2011년에 입학했는데 이제야 졸업 문턱에 다다랐다. 그 사이에 군대가 껴있었고, 컴퓨터 공부를 한다고 휴학을 2번인가 3번인가 했으니, 이제는 나도 지겨워서 이 학교를 졸업하고 싶다. 지난 학기까지 학교에 있었는데 수업에서 내 동기를 거의 만날 수 없었으니, 확실히 11학번은 역사 속으로 빠져줘야 하는 학번이다.
학교 생활은 나에게 참 맥빠지는 시간들이었다. 난 전형적인 아싸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소극적이었나 싶다. 활동은 여러 가지를 했다. 동아리만 해도 봉사 동아리, 독서토론 동아리, 외국인 교류 동아리, 우리말 언어 공부 동아리 등 정말 많이 했는데 신기하게도 모든 동아리 생활이 1학기만에 끝났고, 정말 의미 있었고 기억에 남는 동아리는 거의 없는 것 같다(‘거의’라는 말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서 그나마 위안을 찾았는데 2학년 1학기 때 했던 탁구부 생활은 기억에 남는다. 그 친구들과 새벽에 그때 갓 나온 ‘디아블로3’를 했던 것 등이 기억에 남는다.)
동아리가 아니었어도 학교에서 부담 없이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친구도 김 모씨, 공 모씨를 제외하면 정말 없던 것 같다. 수강신청을 마치자마자 김 모씨와 어떤 수업이 겹치는지 확인하던 것이 생각난다.
학교 생활에서 정말 아쉬운 것
하지만 정말 아쉬운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친구? 점점 더 고학년이 되어 가니 수업을 독강하는 것이 전혀 외롭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학교 생활의 낙은 수업에서 느끼는 학문적 성취의 즐거움이나 수업이 끝나고 노천에 앉아 햇볕을 쬐고 책을 읽는 데서 충분했던 것 같다. 마지막 1년은 특히 컴퓨터 수업을 많이 들어서 특히 더 즐거웠다. ‘알고리즘’, ‘네트워크’ 등등.
내가 정말 아쉬운 것은 학교에서 전공 공부를 좀더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부터는 내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난 11년도에 경영학과로 입학했다. 그런데 경영학과로 입학한 것은 내가 경영을 공부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많은 학생들이 그러하듯, 가급적 학교 수준을 높이고, 취직이 잘 된다는 과를 가게 되었다. 난 수능 본 당시 공부 쪽에 아무런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대학 진학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대신 우리 어머니가 내 성적으로 최대의 학교 성능을 내기 위해 정말 고군분투하셨다. 무슨 사이트였나, ‘오르비스 옵티머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상위권 입시 정보 교류 사이트였다. 이곳에서 눈팅하고 질문하고, 내용 정리하고… 그렇게 정해진 곳이 외대 경영학과였다. 지금도 이 생각을 하면 엄마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생각뿐이다.
아무튼, 난 경영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아니, 뭘 배우는지도 모르는 학문인 채로 이 과에 들어왔다. 난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공부하지 않았다. 내가 1학년 때 배운 ‘회계원리’, ‘경영학원론’은 내 적성에도 안 맞았을 뿐더러 그때는 내가 공부할 의지도 없는 시기였다. 학교 생활이 재미 없는 것도 한몫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난 2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군대를 갔다 왔는데 갔다 오니 정말 전에 배운 내용들이 휘발되었더라.
그때부터인가,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전혀 공부해보지 않은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학교 수업을 듣다가 어떤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인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적으려고 한다. 프로그래밍은 확실히 나에게 맞았다. 처음에 C 언어를 공부했는데, 마케팅의 어떤 문맥 의존적인 개념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pass by value’ 같은 것을 배우는 것이 훨씬 재밌었다. 하지만 그 즈음에는 경영이 워낙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학문이다보니 제대하고 나서는 ‘인사’와 같은 입대 전과는 다른 수업을 들었는데 제대 버프도 조금 있고, 상대적으로 나에게 더 맞아서 시험 공부는 했던 것 같다.
내가 천착하고 있는, 프로그래밍에서 배운 개념들은 모두 현실에 응용 가능한 것들이다. 아니 애초에 프로그래밍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되었기에 현실을 모델링하며 현실과 프로그래밍은 적용가능한 접점이 있다. 즉, 프로그래밍의 개념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가 프로그래밍에서 배운 개념 중 좋아하고, 더 공부하고 싶은 개념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것들은
- 계층화, 다중화, 복잡화
- 알고리즘
- 모듈성
같은 것들이다. 프로그래밍을 더 배우고 내 내공도 좀더 무르익으면서 난 이 개념들을 일상에 적용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가령 ‘마트에 가서 내가 원하는 품목을 찾는 알고리즘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와 같은 것들. 그제야 느끼기 시작했다. 경영 또한 위의 개념들과 확실한 접점을 갖고 있구나…
삼성전자의 간략한 조직도 그림이다. 왜 삼성은 복잡하고 귀찮게 사내 직원들을 각 부서로 나눠 배치할까? 그리고 학교에서는 경영 과목을 대충 이름만 지어서 수업하면 되지, 왜 인사, 경영, 재무 등 다양한 영역으로 나누고, 고등과목을 세분화해서 포함시킬까? 누구 좋자고?
인사에서는 임직원의 pay를 결정하는 수많은 방법들이 있다. 그것들이 결국 알고리즘 아닌가? 알고리즘의 정의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련의 절차와 방법, 명세’니까 말이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가지의 알고리즘이 있을 수 있고 우리는 이중 복잡도 등에서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찾는다. 경영 또한 비용 대비 효율성, 효과성을 찾는 학문이 아닌가?
이렇게, 프로그래밍 철학, 방법론의 너무나 많은 부분이 경영과 겹친다. 학교 생활을 반 이상 마치고 나서야 난 경영의 재미를 느꼈지만 경영 학점이 얼마 안 남지 않았고 나머지 학점은 영문학과 자유선택으로 채우게 되었다.
결국 난 내 1전공인 경영에서 많은 수확을 거두지 못하고 졸업하게 된 것이 너무나 아쉽고 후회스럽다. 내가 경영의 가치와 재미를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계층화, 전문화, 알고리즘이 우리 생활과 우리 생활을 빙 둘러싸고 있는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경영을 전공하고 프로그래밍을 공부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으레 하는 말은, ‘경영과 프로그래밍에 모두 인사이트를 가진 인재네요’이다. 그 말을 들을 때 난 마음속 한켠이 불편하다. 내가 경영에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을까? 오히려 프로그래밍보다 자신이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 진부하지만 ‘Time waits for no one.’ 이건 정말 사실이다.
나의 재미 없었고 외로웠으며 잘 배우지도 못했던 학교 생활이여, 20대 초반의 흐리멍텅한 불꽃만 흩날린 경영학도의 기억이여.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다만 만물을 잇는 거미줄 같은 지식, 통찰 체계 속에서라도 프로그래밍을 통하여 경영에 대한 한 줄기 곧은 선만은 남기고 있으니..
지금 밤에 달이 저렇게 밝은데, 왜 내 학교 생활은 그토록 밝지 못했을까? 난 그저, 그 시선을 내리지울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