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취업행(就業行)

[시(詩)] 취업행(就業行)

2019, Dec 13    

취업행(就業行)

그윽한 커피향 가득한 카페 안에서
에디터를 켜고 키보드 세팅을 완료한 뒤
색색의 코드가 쓰인 모니터에서 너는
문득 스파게티 코드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너의 코드라고 생각지 말아 다오.
구린내를 풀풀 풍기며 개판을 벌이는
낯익은 코드들이 네 곁에 있지 않느냐.
의미는 없고 식별만 가능한 변수명과
내가 곧 코딩 컨벤션이라는 자기 확신
어떻게 시간초과가 뜨지는 않은 코드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다오.
동료들의 어리둥절하고 멍한 표정 같은
확장성과 범용성이 없어 작성하면 끝인 코드 같은
취업에 도움 안 되는 것들에 한눈 팔지 말아 다오.
문제를 맞았다는 초록색 글씨와
1차 코딩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축하 메일은 얼마나 경쾌하냐.
예부터 개발은 취업하기 위함이라 했으니
이름은 대충 짧게 짓고
변수는 전역공간에 모조리 다 쑤셔박아 다오.
되도록 코드 리뷰는 하지 말아 다오.
코드가 이해 안 될 때는 다만 '어?'라고 말해 다오.
리팩토링을 해보고 싶으면 다른 문제를 풀어 다오.
누군가 코드의 가독성을 지적할 때는
오늘 푼 알고리즘 문제의 난이도에 관하여
곧 코딩 테스트 볼 회사의 기출문제에 관하여
요즘 강조되는 알고리즘 공부의 중요성에 관하여
이야기해 다오.
취업을 위하여
너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