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의 힘
- 요기요를 그만두기 직전에 쓴 글입니다.
‘안녕하세요’의 힘
연말이 다가오니 4년 전 편의점 알바를 하던 것이 생각난다. 다음해 여름에 갈라파고스 여행을 가기 위해 반년 동안 근무했는데, 금토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8시까지 근무했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 고급 아파트 단지 내 편의점에서 근무했는데 아파트 단지 내에 있어서 그런가? 듣던 것처럼 술마시고 새벽에 꼬장부리는 사람들은 없어서 비교적 편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사장님도 많은 대화를 해보지는 못했지만 좋은 분이었다고 기억한다. 업무하고 얼마 안 되어 5만원의 잔고 미스가 발생했는데, 이를 내 임금에서 제하지 않아주셔서 되게 감사했다. 많은 경우 미스 금액이 이렇게까지 크면 근무자가 변상한다고도 들었다.
새벽 근무는 대개 오후 10시에서 12시까지 바쁘고 그후에는 손님이 많이 없어 졸음과의 싸움이었다. 금요일 오후 10시에 늦은 근무를 마치고 주말을 즐기기 위해 술을 사 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정 이후 새벽에는 고민에 잠겨 잠에 들지 못한 사람들이 술을 사러 오거나 담배를 사러 드문드문 왔다. 새벽에는 손님이 거의 없어 졸음이 밀려오는데, 차마 잘 수는 없었기 때문에 모바일 게임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매점 안에 CCTV가 있기 때문에 졸거나 했으면 그 시간대는 곧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지 않았을까.
나는 근무하며 손님들을 관찰하는 것을 즐겼는데, 편의점에 없는 것이 없듯 사람들도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다양한 경제적, 사회적, 성적, 연령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대를 떠나서 확인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거의 일관된 행태가 있다. 사람들의 표정이 매점에 들어올 때부터 결제 후 나갈 때까지 한결같이 무표정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편의점은 단순히 필요한 것을 잠깐 사러 들르는 공간이다. 싸구려 호텔이나 하다못해 동네 식당 수준의 서비스도 기대하지도 않으며 카운터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떠나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그 사람들에게 나는 하나의 인간이라기보다는 결제를 담당하는 멀뚱멀뚱 서 있는 객체
정도에 불과했고, 나에게도 손님들은 빨리 좀 가주었으면 하는 서비스 클라이언트에 불과했다. 그렇게 나와 손님들의 관계는 말그대로 경제적인 관계에 불과했다. 김춘수의 ‘꽃’의 비유를 빌리자면 그들은 내게 그저 기호로서의 이름 정도에 불과했다.
그때는 연말이었고 가족과 지인,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연말에 익숙한 덕담을 주고받는 시기였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고객들이 매점을 떠날 때 ‘안녕히 가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덧붙이며 떠나보내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그 짧은 한 마디는 재미있는 반응을 많이 일으켰다. 결제 후 무심히 나가려는 사람들에게 내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한 마디 외면 그들은 흠칫 멈추며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나도 그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높은 확률로 그 답례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해주었다. 그 1분을 채 넘기지 않는 짧은 순간과 대화. 그 짧은 시간동안 그들은 내게 꽃
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행동으로 내가 얻은 경제적 효과는 전무하다. 사장님이 시급을 100원이라도 올려주지 않았고, 나 귀찮은 일만 한 것이다. 잠깐 인사한 것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다. ( 솔직히 지금 적는 이 순간에도 조금은 그런 것 같다. ) 하지만 나를 스쳐 지나갔던 많은 사람들이 내게 던져 준 따듯한 인사는, 그 각각은 작은 불씨에 지나지 않았지만, 모이고 보니 그 추운 겨울 내 알바 시간을 충분히 따듯하게 해주었다고 믿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난 그 사람들이 나를 바라봐주고 응답을 해준다는 것이 아닌, 내가 그들에게 행복을 기원해줬다는 그 사실 자체를 즐긴 것 같기도 하다.
자, 이제 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회사에 있다보니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이세카이 김동욱 님과 충휘 님이 생각난다. 난 그분들을 참 좋아했는데 그 분들이 나갈 때 참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특히 충휘님에게는 떠나는 당일날 회사에 대한 그동안의 헌신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회사를 내 마음대로 대표해 내 돈으로 선물을 사서 드렸다. 별 소득없는 개드립만 치며 같이 떠들고 낄낄대기만 하던 그분이 그때 보여줬던 눈망울 큰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데.
그러나 어느 순간 나 자신이 바빠지며 사람들이 나간다는 사실에 무감각해진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최근에 떠나간 사람들 중에는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고 떠나보낸 사람도 있다. 험난한 외지를 테라포밍하러 간 그들에게 난 최소한의 사회적인 의미로도 행운을 빌어주지 않았다. ‘내가 바빠서 놓쳤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핑계에 불과하고, 사실 그냥 내가 가진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한다.
그냥 보낸 그들이 아쉽다. 아마 내년에도 떠나가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나는 우리를 떠나가는, 이 회사를 떠나갈, 마음이 떠난 그 사람들을 위해 ‘안녕하세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하겠다고 올해를 되돌아본다. 나는 내 것을 되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