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소수 블로그 애독자들에게 고함
1. 저의 근황
안녕하십니까? 정말 오랜만입니다. 2020년의 첫 포스트네요. 제 블로그에 극소수의 애독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메일로 질문주시거나 한 분들이 있었거든요. 그때 참 뿌듯했는데요. 그분들이 생각났습니다. 블로그를 잠시 쉬게 되면서요. 이분들이 정말로 제 글을 기다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모르기 때문에 제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요즘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IT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요. 저에게도 이런 날이 있네요. 경영학과 재무수업에서 교수님이 엑셀 공부해보라고 한 것에서 시작해서 C, Java, 데이터분석, 웹 프로그래밍, 파이썬, DNS, TCP/IP, 알고리즘을 공부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설마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아 참고로 제가 취업하는 데 블로그 운영이 도움이 좀 됐습니다. 확실히 꾸준하게 뭐든 하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도 개발 블로그 운영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혹시 Jekyll 등 설치 관련해서 질문 생기시면 언제든지 메일 보내주시면 됩니다.
다만, 지금 제가 일하는 건 시한부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2달 동안 다니고 성과 평과 후 부족하면 잘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 때문에 요즘 부담을 꽤 느끼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이 회사가 좋고 사람들도 마음에 들거든요. 솔직히 잘 정착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노력해야겠습니다. 블로그를 한창 할 때는 매일 일어나자마자 구글 애널리틱스 들어가서 트래픽 수 확인하는 재미로 살았는데 잠시 내려놔야겠어요. 사실 지금 초반이라 너무 낯설고 힘들어서 뭐가 뭔지도 모르겠네요.
2. 와서 느낀 것
제게는 첫 직장이고 이 회사가 작지는 않은 회사입니다. 이곳에 와서 ‘나는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제가 미숙하게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타인의 시선에서는 얼마든지 틀렸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게 되었고 보다 겸손하게 됐습니다. 확실히 사람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야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파이썬의 for else
문을 무조건 안 좋다고만 생각했습니다. ‘effective python’에서도 쓰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고 제가 정리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이곳에 와서 꼭 그렇지 않을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파이썬을 잘하는 사람들만 모여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저 문법이 혼란을 야기하지 않을 수 있겠죠. 이 코드를 외부에 공개할리도 없을테니까요.
3. 결론
여러분 저는 잘리거나, 계속 일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사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는 제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솔직히 생각했는데 여기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둬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두 달 뒤에 안 잘리고 다니고 있을까요? Please keep your fingers crossed.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 포스트에 업데이트하겠습니다. 그리고, 노력할게요. 세상이 더 넓다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 넓은 세상을 뛰어다니고 싶어요. 살아남고도 싶구요.
마지막으로 얼마 안 되는 제 애독자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만약 제가 살아남는다면 독학하면서 쓴 어설픈 글이 아니라 현업의 경험이 녹은 보다 더 유용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기반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잠시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다음 글은 2달 후인 4월 초가 될 것입니다.
안녕히…
4. PS
그동안 심심하지 않으시라고 제가 요즘 생각하고 고민하는 주제를 몇 개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할 것 없는 분들은 한 번 가볍게라도 고민해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 인간은 진화하면서 왜 체모를 유실했는가, 그중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두드러지게 유실한 이유는 무엇인가?
- 자유와 평등은 모순의 관계일까? 이 둘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 정의란 무엇인가? 상황과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golden rule을 찾을 수가 있을까?
- 모든 자료구조는 그래프 자료구조로 환원될 수 있을까? 아니면 조건이 더 필요한가?
- 설거지를 혼자 할 때 드는 시간이 x일 때, 두 명이서 하면 드는 시간이 x/2가 아닌 그 이하가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둘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법칙이 있을까?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 내 연봉이 x이고 주 40시간 일할 때, 하루 일하면 몇 퍼센트의 연봉을 만들어 내는가?
- 왜 김재규는 중앙정보부가 아닌 육군본부로 갔을까?
사랑
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몇 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을까?- 역사상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는 분명 존재했다. 그러면 다부다처제는 어떨까? 그 이유는?
고맙습니다.
5. 그 이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진짜 4월이 됐어요. 음… 오랜 하늘색 노트북을 만지는 게 참 낯서네요. 짧은 기간 맥북 좀 썼다고 저랑 몇 년을 동고동락한 이 노트북이 너무 작아보이고 키도 다르고 하니까요.
결론부터 말해봅시다. 일단 저는 계속 일하게 됐어요. 제 직군은 제 생각에는 웹 어플리케이션 개발자라는 명함이 적절해보입니다. Django 모듈을 개발하고 있어요. Django를 제대로 개발해본 적도 몇 번 없는데 사람 인생 참 어떻게 나갈지 모르네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곳의 개발 프로세스는 경이로워서요. 참 배울 게 많은 곳입니다. ‘암흑의 핵심’에서 마지막에 외쳤던 ‘오오 놀라워라~~’가 생각나요. 이 프로세스와 철학, 통찰 이런 것들을 모조리 다 흡수할 생각입니다. 전에는 어설프게 ‘시스템과 구조화에 관심이 있다’라고 철판 깔고 부끄럽게 말하고 다녔는데 부끄럽지 않고 말할 수 있게 말입니다.
향후 블로그 운영 방향에 대해 고민해보고 있습니다. 일단 제가 알고리즘을 요즘 많이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알고리즘 포스트를 많이 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조금 있다가 올리겠지만, 매우 유명하고 기본적인 알고리즘 포스트는 제 포스트가 많이 상위권에 있고 그래서 사용자의 방문에 큰 기여를 하고 있어서 하자면 알고리즘도 얼마든지 더 할 수 있겠는데, 음 글쎄요.
일단 꿈은 진화론이나 간단한 네트워크 관련한 포스트도 올리고 싶습니다. 전 알고리즘보다 진화론을 더 사랑해요. 진화는 사실이고 역사며, 과거이자 현재, 미래를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현상이거든요. 다만 느려서 인간은 인식도 못하고 죽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진화와 관련된 포스트를 하나도 올려보지 않았네요. 의지만 있었다면 ‘자연선택이란 무엇인가’라는 필수적인 주제에 대해서라도 적어볼 수 있었을텐데. 그래서 진화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지 조금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적어보고 싶습니다.
네트워크도 마찬가지에요. 좋아하는데 안 적어봤어요. 메시지가 레이어를 타고 내려가면서 패키징되고 언패키징되고 되고 되고… 이 연속이 얼마나 경이로운데 이런 거 하나 안 적어봤다니. 진짜 뭐한건지 지금 생각하니까 이해가 안 가는군요.
어쨌든 하고 싶습니다. 근데 솔직히 일하면서 포스팅할 시간이 될지 확신은 없어요. 노력은 해보겠는데요. 보수적으로 판단해서, 가끔씩 블로그를 올리겠습니다. 가끔씩
이것도 어려운데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 글은 어차피 제 사후에 출판될 글들이기 때문에 감가상각을 많이 타지 않아요. 따라서 한 달도 나쁘지 않습니다.
PS. 여러분들의 성원으로 월 1만뷰를 찍었습니다.
감가상각을 고려한 제 선택은 옳았습니다. 저는 매일 틀린 짓을 많이 하지만 성장해서 옳은 선택을 할 때도 있는 것이에요. 제 컨텐츠의 질이 좋아서인 것도 맞습니다만, 그래도 선택해주시고 봐주시고 코드 복붙(ㅋㅋ)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런 기록을 보거나, 여러분들이 댓글 달아주실 때면 정말로 힘을 받는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