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스케의 결혼식을 통해 바라본 나의 갈등
결혼식의 경제성
《총, 균, 쇠》 어디에서였던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사회문화풍습을 나열한 문장이 있다. 노래, 매장, 그리고 결혼. 그래, 결혼은 유사 이래 지금까지 전지구적인 문화풍습이라고 하겠다. 결혼이란 어떤 의미일까, 고민을 많이 했고,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일단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결혼이란 결혼 상대방을 서로의 파트너에 사회, 도덕적으로 구속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즉, 내 배우자 외에 외도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사회, 도덕적 구속 장치. 그럼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느냐는 또 어려운 질문이기에 일단 여기까지 하자.
한국에도 전지구에 예외는 아니라서 결혼식 문화가 있다. 같은 풍습이라하더라도 지역마다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결혼식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난 한국의 결혼 풍습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오늘은 그에 대한 이야기로 어제 있었던 희스케의 결혼식을 참석하고 느낀 감정을 적어볼까 한다.
일단 난 한국의 웨딩홀 결혼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좁은 웨딩홀에 사람을 구겨넣는 한국인 누구나 예상하는 결혼 방식. 좀 열린 탁 트인 곳에서 결혼을 할 수는 없을까? 돈의 문제일까? 물론 이 기호는 순전히 개인적인 기호일 뿐이다. 내가 진짜 문제를 삼는 부분은 ‘축의금 교환방식’이다. 결혼식에 가는 누구나 축의금을 낸다. 홀 입구에 카운터가 있어 봉투에 돈을 넣고, 봉투에 내 이름을 적고 방명록에 내 이름을 크게 남긴 뒤 혼주측에 돈봉투를 건넨다. 액수는 뭐 결혼하는 사람과의 관계, 개인의 신념, 개인의 경제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결혼식 이후 혼주측은 봉투를 세며 누가 얼마나 축의금을 냈는지를 계산한다. 누군가 예상보다 적게 냈거나 많이 냈을 때(관계에 비해, 그 사람의 경제수준에 비해) 이를 우리는 평가하며 실망하기도 하고 고마워하기도 한다. 다른 나라도 축의금을 내는 것으로 아는데, 이 글에서는 한국의 결혼식만을 다룬다.
내가 문제를 삼는 부분은 바로 축의금의 액수가 관계의 척도가 되고, 또 내가 너의 결혼식에 축의금을 냈으니 나도 축의금을 받아야 한다는 교환 관계가 된다는 점이다. 내 의견을 짧게 이야기해보자면, 성인이 주말에 반나절을 써가며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감사한 일이다.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돈의 액수로 관계의 급을 나누고, 내 지갑이 불황일 때 ‘이 이상은 힘든데…‘라고 고민을 해야 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 ‘직장인 동료에 축의금을 얼마나 내야 하나요?’ 이런 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화제가 되는 것만 하더라도 이런 고민이 꽤나 스트레스가 되고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에는 돈의 액면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결혼하는 커플의 사랑도 그럴 것이다. 그러면 그 둘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하객의 마음은 그러면 안 되는 것인가? 결혼식에서 반갑게 인사하고 뜨겁게 안아주며 축하한다는 말로써는 부족한 것인가?
또 교환 관계가 된다는 것도 웃기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결혼하면 그동안 내왔던 축의금을 회수해야 한다’고 많이 말씀하셨다. 결혼식 한 번 갈때마다 못해도 십만원씩은 깨지셨을테고, 그것을 모으면 무시못할 금액이 되겠지. 이는 내 부모님만의 생각이 아니고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애초에 서로 주고받아 제로섬이 될 것이면 안 내면 어떨까 싶다. 얼마 전에 비혼주의자가 지인에게 자신이 낸 축의금의 일부를 달라고 했을 때 생긴 갈등을 커뮤니티에 올려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참 웃픈 일이다.
이런 이유로 결혼이 아닌, 의식으로서의 ‘결혼식’은 참석할 때마다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희스케의 결혼식
희스케는 내 군대 선임으로 내가 감사함을 느끼는 정말 소중한 친구다. 나는 개성으로 군대에서 많이 힘들어했는데 희스케는 이런 내 개성을 재미있어했고 나를 진심으로 위해줬다. 이 사람은 지금 일본에서 살고 있고, 배우자도 일본 사람이다. 한일교류회에서 만나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내가 ‘희스케’는 일본에서 일하며 사는 이 친구에 대한 내 애칭이다.
작년 11월에 난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을 한 달 여행했다. 일본의 많고 많은 곳 중 여행의 시작은 도쿄였다. 서울에서 평생을 산 나는 도시에 대한 환상이 없고 관심도 없다. 한 달 동안 대부분 중소도시나 시골을 돌아다닌 일본 여행에서 굳이 도쿄를 간 이유는 희스케를 만나러 가기 위함이었다. 희스케는 결혼식은 안 했지만 이미 결혼신고는 하고 아내분과 도쿄 어딘가에서 살고 있었다. 내가 일본을 간다고 하니 희스케가 초대해줬고 그렇게 희스케의 집을 찾아가 아내분과 만나고 같이 술도 마시고 재밌게 놀았던 것이 생각난다. 내가 아는 한 일본에서는 집에 찾아가거나 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익숙하지도 않은 문화라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아내분이 한국인 사람과 살면서 많이 한국인화(?)된 부분이 있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환대해주셔서 감사했다.(물론 たてまえ였을 수도 있다) 희스케는 한국에서 동생이 자신을 보기 위해 도쿄에 왔다는 것에 매우 기분이 좋았나보다. 많이 취해서 군대 동료들에게 전화 돌리고 아내에게 짓궂은 농담을 던졌으며 나는 내가 온 것이 틀린 선택이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희스케는 아내에게 짓궂은 농담을 많이 던졌는데, 아내분이 싫어하며 잔소리했지만 난 느낄 수 있었다. 아내분의 히스케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이 둘은 행복한 커플이 되겠구나 확신했고, 귀국길에 희스케에 전화하며 이 이야기를 하니 재미있어 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 부부는 국제커플이다보니 결혼식을 일본에서 한 번, 한국에서 한 번 총 두 번을 했다. 어제가 한국 결혼식이었으며 당연히 나도 참석했다. 내가 희스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더 많은 돈으로 표현해야 했다는 생각에 잠시 찜찜해하며 자리에 앉았고 결혼식이 시작됐다.
딸의 결혼을 위해 부모님은 오사카에서 이 먼길을 오셨다. 또 한국의 결혼방식에 익숙지 않으셨을텐데 열심히 연습하셨는지 양복과 한복을 곱게 입으시고 식장 앞에서 하객들을 맞으셨다. 그냥 봐서는 일본인인지 몰랐을 것이다.
자리에 앉아 결혼식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아름답다’는 말을 연발했다. 결혼식에서 언제나 보는 빛을 발하는 샹들리에가 아름다웠고, 모든 벽에 은은히 배어져 있는 조명이 아름다웠으며, 결혼식마다 어디서든 보는 하얀 꽃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름다웠으며, 선남선녀 부부가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희스케는 제도에 대단히 순응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본인도 결혼식을 하기 싫어했는데 일단 결혼식을 하게 되니 얼굴에서 빛이 났으며 행복해보였다. 그리고 아내분도 별다른 표현을 구할 필요없이 아름다웠다. 이미지는 전이된다. 생각은 전달된다. ‘아름다움’이라는 뜬구름잡는 단어가 구체화된 바로 그 순간을 보니 그때, 나도 아름다웠다고 믿는다.
결혼식에서 부부가 양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부모님은 부부를 안아주는 세션이 있다. 전국결혼협회라도 있는 것인지 어디든 다 그런 것 같다. 일본인이신 아내분 부모님께 인사드릴 때, 진행측의 도움을 받아 부모님이 신랑신부를 안아주실 때 아내분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봤다. 나는 보기 힘든 국제결혼식 내내 한국 결혼식에 익숙지 않은 아내분 부모님이 어떻게 행동하실까 흥미롭고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던 입장에서 울림을 받았다. 사랑은 국적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닌 것이다. 왜인지 가벼운 미소가 입가에 번졌고 그래, 나 감동 받았다.
피로연 때 식사를 하며 부부가 내가 있는 테이블에 왔다. 난 당연히 아내분이 날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본 것은 그날 저녁 하루뿐이라서 이는 얼굴을 익히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나만 하더라도 한 2, 3일 본 회사 동료는 얼굴이 정확히 기억 안 나기도 해서 그렇다. 그런데 아내분은 나를 기억했고, ‘고마워요’라고 말해줬다. 오히려 내가 너무 감사했으며 일본에 있는 동안 배운 관서 지방 사투리를 섞어 ‘혼마니 오메데토’라고 축하인사를 건넸다. 아내분이 워낙 빵 터지셨기에 뭔가 뿌듯함을 느꼈다.
딜레마 아닌 딜레마
결혼식을 갈 때마다 이런 딜레마 아닌 딜레마를 계속 겪는다. 이 문제의식에 짜증을 느끼면서도 결혼식장에서는 감동과 아름다움에 취하는 상황. 안타깝게도 결혼식을 갈 일이 앞으로도 있을 것 같아 생각 정리가 한 번은 필요한 것 같다. 무슨 생각 정리? 글쎄 그것도 잘 모르겠는데, 확실한 것은 내가 짜증을 내면서도 돈으로 내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 삭막한 관습을 따르리라는 것을. 그리고 결혼식에서 여러 빛나는 감정을 느끼리라는 것을…
이 글은 반은 희스케에게 바치는 글이다. 희스케에게 정말 축하한다고 전하고 싶다. 물론 이 글의 링크는 보내지 않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