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ad experience in trip to Galapagos

A sad experience in trip to Galapagos

2019, Dec 11    
  • 이 포스트를 뉴욕에서 은퇴한 영문학 교수인 Alexus에게 바칩니다.

0. Index

  1. 들어가며
  2. 갈라파고스 여행
  3. Alexus 이야기
    • 3.1. 체스 고수 Alexus
    • 3.2. 정말 마음 아팠던 이야기
  4. 마치며


1. 들어가며


알다시피 나는 진화의 열렬한 추종자이며 성실함과 끈기의 달인으로서의 다윈을 존경하는 사람이다. 진화와 그에 대한 존경의 표시는 결국 갈라파고스 여행으로 이어졌고 그게 벌써 1년 반 전이다. 참 시간 한번 빠르다. 레이오버도 없이 가는 데 40시간, 오는 데 50시간 걸려서 공항에서 개고생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공항 화장실 좌변기 옆에서 누워잤던 것은 결코 못 잊을 것 같다. 그렇게 돌아오고 나서 며칠 동안 스트레스로 인한 설사로 고생했었다.

이것말고도 여행에서 기억나는 것은 정말정말 많지만 역시 씁쓸했던 경험이 아직도 간간이 떠오른다. 오늘은 그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생각해도 아쉽고, 씁쓸하고 마음 아픈 이야기. ‘타임리프로 그때로 돌아갈래?’라고 물으면 굳이 가지는 않겠지만 생각은 나는 이야기. 오늘은 이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시작합니다.


2. 갈라파고스 여행


Location of Galapagos

난 작년 6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약 45일간 남미 서쪽에 위치한 갈라파고스 군도를 여행하고 왔다. 에콰도르 소속으로 내륙으로부터 1000km 정도 떨어져 있고 진화론의 아버지이자『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착안했다고 알려진 그곳. 고유 동식물의 보고로서 인간이 각종 동물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법에 저촉될 정도로 환경보호에 적극적인 곳. 난 진화를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이곳을 한 번은 와야했고 잊지 못할 경험을 정말 많이 했다. 그곳의 바다, 동물, 산, 바람, 사람…

갈라파고스 군도에는 사진에서 보듯 수많은 작은 섬들이 있지만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4개뿐이고, 그중 대표적인 것이 산타크루즈, 산크리스토발, 이사벨라 등이 된다. 산타크루즈는 군도를 잇는 요충지이자 가장 번화한 섬으로 우리에게 익숙하게 비유하자면 뉴욕이라 할 수 있겠고, 내륙에서 가장 가까운 산크리스토발은 군도의 행정의 수도같은 느낌으로 워싱턴에 비견될 수 있겠다. 다음 이사벨라는 가장 자연에 가까운 섬으로 다르게 말하면 개발이 가장 덜 된 곳이다. 다른 두 섬과 다르게 포장도로가 적고 밤이 되면 가로등도 많이 없어 깊숙히 들어가기 두려워지는 곳. 이 이야기는 내가 이사벨라를 여행 중이던 때에 일어난 일.


난 세 섬을 모두 방문했지만 어디에 있든 숙소는 필요하고 이사벨라에서는 한 숙소에서만 몇 주 머물렀다. 그 숙소가 너무너무 좋아서도 아니고, 인터넷도 너무 느렸으며, 가격이 싸지도 않았다. 그 숙소에 묵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숙소에 딸린 노천 카페를 하루종일 이용할 수 있어서였다. 이 노천카페는 숙소 이용객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고 바다를 목전에 두고 있어 낮에 아무 생각없이 앉아있으면 기분이 참 좋았다. 아래 사진은 의자에 앉아 바라보이는 해변.

Bar de beto

이 카페의 이름은 ‘Bar de Beto’였는데 이름이 ‘Bar’인 이유는 이곳이 밤이 되면 이사벨라에 유일한 클럽이 되고는 했기 때문이다. 그 조그만 공간에서 술도 팔고 음악 틀고 찬란한 조명 두는 것이 재밌었다. 갈라파고스의 가장 흥한 섬인 산타크루즈에 있는 클럽도 갔었는데 거기는 정말 서울에 있는 클럽 느낌이 났었는데 그것과 비교돼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Beto’는 숙소 및 클럽 주인 아저씨 이름이 ‘Beto’였다.

이사벨라에 있으면서 딱히 여행하거나 돌아다니는 날이 아닐 때는 항상 이 노천 카페에 앉아서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바다가 참 가까워서 석양 보는 맛이 있었는데.(로고 사진이 딱 그거다)


3. Alexus 이야기



3.1. 체스 고수 Alexus

그렇게 카페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해변에서 웬 지팡이를 짚은 백인 노인이 다가왔다. 피서지 복장에 반바지를 입고 샌들을 신었으며 지팡이를 짚으며 절뚝거리는 그냥 백인 할아버지. 난 와이파이로 인터넷을 하고 있었기에 그가 다가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최소한의 자기소개도 없이 초면에 대뜸 한 말 ‘너 체스 둬? 한 게임 할까?’. 조금 당황했는데 딱히 할 일도 없어서 같이 체스를 두게 됐다. 지팡이를 짚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들고 있던 꾸러미 안에는 이동식 체스판이 있었고 바로 게임이 진행됐다.

대충 세 판 정도 했는데 내가 정말 무난하게 모든 게임을 졌다. 내가 체스를 잘하는 것은 결코 아니더라도 친구들이나 동생 등 지인과 뒀을 때 압도적으로 진 적은 없는 것 같다. 근데 이 양반한테는 정말 무난하게 다 졌다. 스무스하게.

들어보니 Alexus라는 이름의 이 양반은 체스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들어보니 평생을 체스를 뒀다는 식으로 말했다. 지인들은 물론 나에게 한 것처럼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서슴없이 체스를 둘 정도로 체스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 체스 둘 때도 난 한두 수 앞을 못보는데 이 사람은 대충 봐도 4, 5 수는 앞을 보고 두는 것 같았다. 내가 결정적인 실수를 할 때마다 그 수가 초래할 결과를 직접 말들을 움직이면서 보여주며 수를 물러주고는 했다.


그렇게 다 지고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번 턴에 어떤 수를 둘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합니까?’ Alexus는 흔쾌히 ‘Ok’라고 이야기하더니 자신의 팁을 알려줬다. ‘어떤 말을 움직일 때 가급적 체스판의 가장자리가 아닌 중원으로 옮겨라.’ 왜?? 왜 그럴까? 사진으로 이해해보자.

Chess board example

체스판에 나이트가 두 개 있다. 하나는 검은색, 하나는 하얀색. 이때 검은색 나이트는 판의 중원에 위치하고 있고, 하얀색은 판의 가장 구석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때 이번 턴에 각 말을 움직이고 싶다고 하자. 보드가 비었을 때 검은색 나이트는 최대 8칸의 다음 수가 가능하지만 하얀색 나이트는 구석에 있다는 죄로 단 두 개의 다음 수가 가능하다. 이게 결정적인 차이다. 말이 가급적 중원에 위치함으로써 선택할 수 있는 다음 수의 경우의 수가 늘어나고 따라서 플레이어는 사용할 수 있는 더 많은 옵션이 생긴 것. 더 많은 옵션 속에서 내가 이동가능한 칸에 상대의 말이 있다면 그 말을 먹을 수도 있고 때로는 위험 속에서 뒤로 도망갈 수도 있다.

이때 한 수를 두는 것을 비용이라고 비유한다면 가능하다면 미래의 가능한 효용을 늘리는 것이 낫고, 이때 효용, 즉 승리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음 수의 가짓수가 많은 것이 당연히 더 유리하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내가 가위바위보를 할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태가 세 개가 아닌 두 개뿐이라면 당연히 내가 더 불리해질 것이다.

이 조언을 듣자마자 난 뭔가 ‘아’ 하고 깨달았다고 느꼈다. 내 선택의 가짓수를 늘리는 것. 왠지 재무에서 분산투자가 생각나기도 했고, 프로스포츠에서 감독 입장에서 기용할 수 있는 선수가 더 많을 때 보다 유리할 수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이 가르침으로 내가 더 체스를 잘하게 됐는가? 사실 귀국해서 체스를 많이 둘 기회가 없었기에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Alexus의 체스 철학에 동의하게 됐기 때문에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이 조언을 기준 삼아 보다 신중하게 착수(着手)해 나갈 것 같다.


3.2. 정말 마음 아팠던 이야기

이번 포스트의 주제는 갈라파고스 여행에서 슬펐던 이야기를 기록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이 분에게 체스를 진 것이 정말 슬펐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체스 좀 질 수도 있는거지. 당장의 승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의 게임에서 유용할 좋은 교훈을 얻었는데.

본 주제는 지금부터다. 앞서 나는 Alexus가 백인 할아버지이고 체스광이라는 언급만 했고 무슨 일을 하는, 또는 했던 사람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뜬금없이 초면에 체스를 두기는 했지만 체스를 두다 보니 조금씩 친해졌고 서로에 대해 가볍게 이것저것 물을 수 있었다.


Alexus는 들어보니 은퇴한 영문학 교수였다. 그는 이사벨라 섬이 좋은지 교직에 있을 때도 휴가 때마다 섬을 찾을 정도로 이 섬에 대한 애착이 큰 것 같았다. 그는 학교명은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는데 뉴욕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했다. 원래 아무리 여행에서 즐거웠거나 인상깊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릿해지기 마련인데 이 사람이 말해준 정보들은 비교적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진짜 이야기가 나온다. 본인이 영문학 교수였다고 말하니 나는 별 생각없이 ‘나도 영문학 공부했는데‘라고 말했다. 나는 학교에서 경영을 주전공으로 공부하고, 영문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영 공부보다 영문학 공부가 더 재밌던 것 같다. 어쨌든 내가 영문학 수업을 들었다고 하니 이 사람이 호기심을 보였다. 이 사람이 내게 호기롭게 질문했다. ‘그러면 너가 배운 인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가가 누구야?

나는 당황했다. 내가 들은 제한적인 영문학 수업들에서 나는 시 수업을 많이 들었다. 예이츠, 실비아 플래스, 워즈워스, 키츠, 윌리엄 블레이크… 근데 아무래도 영문학은 부전공이었고 어떤 시인의 시들도 시인의 인생과 함께 배우는 것이 아닌, 유명한 시만 단편적으로 배우다보니 졸업 후에는 이들의 이름만 대충 기억나고 작품은 기억에 많이 남지 않았다. 위에 적은 이름도 구글에 검색해서 기억나는 이름들을 적은 것이다. 영문학 수업에서 시뿐만 아니라 현대 소설, 셰익스피어의 소설도 읽었지만 정확히 기억이 안 났고 순간 당황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래서 나는 질문에 ‘잘 기억나는 사람이 없다‘라고 대답했고 그는 ‘정말? 그게 너가 나한테 말해줄 수 있는 최선이야?’라고 물은 뒤 어색한 침묵이 순간 흘러갔다. 여기서 이 대화는 마무리됐는데 그날 숙소에 돌아온 뒤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너무나 아쉽다. 아니 영문학이 별건가? 그냥 영미 작가가 썼으면 꼭 수업에서 듣지 않았어도 영문학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왜 나는 주저했을까? 왜 나는 서머싯 몸의 소설을 정말 좋아한다고,『운명의 굴레』, 『인생의 베일』,『면도날』 등등 그의 소설을 많이 읽었고, 특히 『달과 6펜스』는 한 5번은 읽은 것 같다고 왜 말을 못했을까? 난 또 찰스 디킨스를 좋아한다고, 『올리버 트위트스』,『위대한 유산』, 『두 도시 이야기』,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재밌게 읽었고 생전에 매우 성공한 대중적인 작가로서 권선징악을 뚜렷이 강조하는 그의 소설에서 그 당시 영국 사람들이 우리 민족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고 왜 말을 못했을까? 대체 왜?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도 넣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사람도 19세기 영국 사람인데.

아쉽다. 왜 내 생각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을까? 학교 교육이 전부가 아닌데. 슬픈 일이지만 우리나라에는 비전공자로서 자신의 분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도 나는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있게 말을 못했다. 어떻게든 내 의견을 개진했다면 전문가로서 내 의견에 자신의 의견을 더해주고 나를 성장시켜줄 어떤 또다른 대화가 진행됐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기회를 내 자신감 부족으로 박살내고 말았으니…

갈라파고스에서는 여러 사람을 만난만큼 인연에서 아쉬운 경우가 꽤 있었는데 그럼에도 이 기회가 두고두고 아쉽다. 더 문학을 잘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데 그 지름길을 걷어찬 것 같아. 그래도 배운 것은 있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또 생긴다면 그때는 나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하겠다. 성장에는 끝이 없기에, 지름길은 과정의 단축일 뿐 목적의 일부가 될 수 없다. 더 정진하자.



4. 마치며


이게 다야? 그렇다. 오늘 내용은 이게 다다. 겨우 이런 게 아쉬워? 그래 이게 난 참 아쉽다. 지금 생각해보니 왜 Alexus와 사진을 찍지 않았을까? 모르는 사람한테 대뜸 체스 두자고 할 정도의 친화력을 가진 사람이면 사진을 찍자고 해도 거절하지는 않았을텐데. 그의 인상과 모습은 기억이 나지만 이제는 얼굴은 흐릿하다. 확실히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라는 사람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는 어떻게 지낼까? 매년 온다고 했으니 올해도 갈라파고스를 찾았을까? 내년에는 찾을까? 그 이후에는? 나는 앞으로 갈라파고스를 다시 찾을 기회가 있을까 의문인데 그래서 그가 부러워진다. 내가 기회를 만들기 나름인걸까? 아니면 그에게 기회가 더 있던 것일까? 글쎄, 정치적인 이슈로 넘어가지 말고 이만 끝낼까 한다.

Good bye Alexus, I won’t forget your lessons of chess and expressing myself.